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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re
상처뿐인 상승 장갑
"나는 용서받을 수 없다." —샤유라, 각성자 워록
시뮬레이션 재구성 기록 // LA-03-03 // 최후의 도시, 탑, 시장
죄책감과 수치심이 스펙트럼 칼날처럼 샤유라의 뱃속에서 뒤틀렸다. 진홍색 울타리로 둘러싸인 신 군주국 구역 아래에 앉아, 그녀는 탁자 표면의 나뭇결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녀의 숨소리는 유난히 시끄러웠고, 주위 군중의 소음은 물속에 들어가기라도 한 듯 먹먹하게 뒤틀렸다.
"오늘은 기분이 어때?"
샤유라에게 들리는 건 자기 숨소리뿐이었다. 그녀는 앞으로 몸을 기울이고, 팔꿈치를 탁자에 얹은 채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현재에 머무르려고 아무리 애를 써봐도 그녀의 정신은 과거에 집착할 것을 요구했다.
"아이코라하고는 얘기해 봤어?"
새로운 죄책감의 칼날이 미끄러지듯 몸을 파고들었다. 샤유라는 침을 삼키려 했지만 목이 바싹 말랐다. 여기까지 올 힘도 없었다. 그래서 자신이 더 무가치하게 느껴지기만 했다.
"아니." 한참 뜸을 들이던 샤유라가 대답했다. 머릿속이 아직 뒤죽박죽이라 대답이 늦었다. "얘기할 거야." 그녀는 아이샤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하며 약속했다. "미안."
"에이, 아니야." 아이샤는 그렇게 말하며 샤유라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몸이 접촉하자 샤유라는 현재의 이 순간으로 돌아왔다. "그러지 마. 다들 참 많은 일을 겪었잖아. 시합을 시작하기 전에 네가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는지 나도 알았어야 했어. 괜히 싸워서 미안해. 소리 질러서 미안하고."
아이샤의 애처로운 목소리는 왠지 도움이 됐지만 그만큼 가슴도 아팠다. 샤유라는 가장 가까운 친구가 그녀 자신의 결함 때문에 고통받는 것을 느끼며 패배감에 젖어 몸을 웅크렸다. 자신은 더 작아지고, 죄책감은 더 커지는 것 같았다.
샤유라는 곁눈질로 아이샤를 보며, 친구의 얼굴에서 그녀를 돕고 싶은 마음과 걱정하는 마음을 함께 읽었다. "수호자가 임무에 부적합해질 수 있을까?" 샤유라는 탁자 위에 엎드려 먹먹해진 목소리로 물었다.
"그게…" 아이샤는 대답했다. 그녀가 주저하고 있다는 사실이 따끔한 아픔을 남겼다.
"내가 괜찮은 건지 모르겠어." 샤유라는 용기 내어 인정했다. 그 말이 입술을 통과하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아이샤의 팔이 어깨를 감싸는 것이 느껴지자 맥박이 조금 차분해졌다. 샤유라는 따뜻한 친구의 품에 몸을 묻었다.
"안 괜찮아도 괜찮아." 아이샤는 그렇게 말했고, 한순간, 샤유라도 그 말을 믿었다. 잠시나마 의혹과 죄책감의 칼날이 무뎌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그래서 아이코라에게 얘기해 보라는 거야. 그녀라면 알 테니까. 이해할 테니까."
"마셔."
샤유라는 그 말에 깜짝 놀랐다. 그제야 리드-7의 관절에서 나는 쉬잇 소리와 방어구가 철컹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뜨거워."
"네 거엔 계피가 들어 있어." 리드가 말했다. 샤유라는 온 힘을 끌어내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슬론 때문에 심란한 건 알아." 리드가 말하자 걱정스러운 마음에 샤유라의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그가 뭔가 다른 말을 했지만, 들리는 건 귓속을 울리는 피 소리와 가슴 속에서 천둥처럼 쿵쾅거리는 소리뿐이었다.
그가 그녀의 반응을 기다리는 것 같아, 샤유라는 어정쩡한 대답을 내놓았다. "고마워." 그녀는 희미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과와 계피 향기가 코를 찔렀다. 처음 탑의 수호자가 되어 처음으로 아이샤와 리드를 만났던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샤유라는 몸을 조금 일으켜 김이 피어오르는 머그잔을 두 손으로 잡고 뜨거운 사과주를 홀짝였다. 행복했던 시절의 향기를 들이쉬었다.
"나도 알아." 그제야 샤유라도 작고 죄책감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뭘 안다는 건지 자기도 몰랐지만, 그들이 그 말을 듣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미안해."
"우리에게 사과할 필요는 없어." 리드는 대답했다. "레이트카와 그의 고스트에게 사과해야지." 수호자 레이트카의 이름을 듣자 샤유라의 뱃속 죄책감의 칼이 뒤틀렸다. 그녀는 계피와 사과 향기를 다시 들이쉬었다. 이들은 친구들이라는 걸 기억하려 했다. 이들이 바로 가족이라고, 그녀는 인정했다.
"타이탄이었어." 한참이 지나서야 샤유라는 인정했다. 그 진실의 의미가 두려웠지만, 자신의 무시무시한 환각을 너무 깊이 파들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타이탄에 돌아간 것 같았어. 빛을 잃고 군체에게 둘러싸였을 때처럼. 어떤 기사가 있었는데… 아무리 죽여도 계속 되살아났어. 난 거기서 죽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잖아." 아이샤가 말했다. 샤유라는 자신의 손 위에 다른 손이 놓이는 것을 느꼈고, 아이샤가 손바닥을 꼭 잡아 주는 것을 보았다. 다른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그래도 마음이 조금 놓였다. "우린 빛을 되찾았고—"
"어둠이 다가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샤유라는 알고 싶었다. 하지만 리드도 아이샤도 대답할 수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는 다시 빛을 잃을까? 혼자서?" 생태도시에서 혼자 죽어갈 슬론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리드가 아무 말 없이 아이샤의 손에 자기 손을 더했다. 대단한 건 아니었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