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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re
아카식 계시록
우리는 시작에서 끝난다.
지구 상공에서 순항 속도로 달리는 매의 조종석에 발그레한 빛이 가득 들어찼다. 위쪽으로는 우주의 어둠 가운데 여행자가 움직임 없이 떠 있었고, 여행자의 껍질에서 무지개색 빛이 뿜어져 나오며 삼각형의 차원문을 만들어냈다.
이 임무에 자원했지만, 막상 미지의 절벽 끝에 앉아 보니 타이탄, 족서의 마음에 의구심이 피어올랐다. "아함카라 사냥과 별반 다르지 않네요." 고스트가 그를 안심시켰다. "무모하고, 성급하고, 위험하죠." 족서는 고스트를 흘끗 쳐다보며 씨익 웃었다. 벌써 기분이 나아진 듯했다.
족서의 매를 양쪽에서 호위하던 기갑단이 엔진을 멈추고, 매가 여행자를 향해 전진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들은 통신을 켜고 울루란트어로 뭐라 지껄였다.
고스트가 대충 해석한 바에 따르면 "알려진 것 너머에는 우주의 공포가 존재한다"라는 뜻이라고 했다. 그 말이 경고인지, 저주인지, 격려인지 족서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기갑단들의 평소 행동을 생각해보면 그 세 가지 전부 말이 되었다.
족서는 비행 스틱을 앞으로 풀며 매를 일정한 속도로 전진시켰다. 차원문에서 나오는 불그레한 빛이 밝아지자 모든 방향에서 표면이 만화경처럼 색색으로 바뀌었다. 고스트의 눈이 커졌다.
족서는 뼛속까지 아찔한 현기증을 느끼면서 조종간을 꽉 잡았다. 주변에서 피아노 음이 메아리로 울려 퍼졌다. 방어구 아래 가슴에 닿는 손길이, 투구 안쪽 뺨에 닿는 숨결이 느껴졌다.
"에릭, 침대로 돌아와." 정신 속에서 목소리가 속삭였다. 도시, 집이 보였다. 가족, 아이들이 아른거렸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들은 우주에서 유일한 존재가 아니었다. 아레스 프로젝트는—
갑자기 고스트가 비명을 질렀다. 의체의 경계선이 조각조각 분리되고 있었다. 화들짝 놀라며 현실로 돌아온 족서가 다시 조종간을 잡자 매의 부리가 차원문에 닿았다. 우주선이 차원문을 통과하기 시작하자, 웃음소리와 비명소리가 들리고 뺨에 닿는 입술과 어깨를 어루만지는 손길이 느껴졌다.
고스트의 비명이 우주 빅뱅의 순간부터 열기로 가득한 죽음까지 이어졌다.
족서는 우주선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비명을 들었다.
"침대로 돌아와."
그는 비명소리를 따랐다.